[기고]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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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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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원 / 에너지정책연대 집행위원장

'에너지전환' 모색 바람직… '에너지전환위원회' 설치 검토해야
공론화위 일방적 설치, 정부 '실책'… 신중한 계획과 협의 필요


지난 8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핵심 정책토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탈원전·탈석탄 정책 추진을 위해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금지하고, 신규원전 건설을 백지화 하는 등 원전 감축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노후 석탄발전 7기를 조기에 폐지하고, 환경설비 개선 등을 통해 오염물질 배출량을 2030년까지 50% 감축하겠다는 방침을 공표했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원전해체산업을 육성, 7만7000개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문재인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의 핵심으로 해석된다.

정말 놀라운 변화이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에서는 에너지 기능조정이라는 이름하에 민영화를 시도하였다. 그렇기에 에너지산업 노동조합은 ‘에너지 공공성’이라는 의제로 에너지 민영화를 막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지난 겨울에 일어난 촛불항쟁에서 '박근혜 정부 퇴진, 에너지 민영화 반대의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과 함께 하였다. 촛불항쟁 이후 박근혜 정부가 물러나고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에너지 기능조정은 한 발 물러서고, 대신 ‘에너지전환’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정책의 패러다임이 시작되었다.

정의로운 전환

 
에너지전환은 피할 수 없는 시대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서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은 지속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에너지전환에 대해 에너지산업 노동조합도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전환을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진정한 고민을 시작할 때가 온 것이다.

필자는 에너지전환은 반드시 정의롭게, 즉 ‘정의로운 전환’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환의 과정이나 결과 모두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정의로움이라는 말에는 여러 내용과 주장이 담길 수 있지만, 필자 생각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은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이나 피해가 노동자와 지역주민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지 않아야 하고, 그 피해와 비용은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에너지전환은 정부와 산업계가 일방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노동자, 지역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활발한 토론을 거쳐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빠진 가운데 에너지전환이 진행되면, 필연적으로 노동자, 지역주민들의 반발과 사회적 갈등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전환은 더욱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노동자와 지역사회에게 일방적으로 비용과 피해를 부담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 산업계, 시민, 노동자가 참여하는 국가 차원의 ‘에너지전환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본다. 에너지정책 결정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것이다. 에너지전환위원회에서는 여러 이해당사자들 간 활발한 토론을 통해 에너지전환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에너지전환 로드맵은 국민 대다수의 광범위한 동의를 받을 것이다. 또한 에너지전환은 어떠한 정권, 어떠한 정치세력이 집권하더라도 국민의 합의 내용을 쉽게 뒤집을 수 없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정부의 ‘에너지전환위원회’ 설치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에너지전환의 기간

에너지전환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기에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에너지전환을 위해 에너지 소비 감소 정책과 함께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줄이고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데는 그 누구도 반대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신중하고도 장기간에 걸쳐서 진행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계획과 기술력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빠른 에너지전환을 위해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급격하게 줄이거나 중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원자력발전소를 급격히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력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블랙아웃이 발생한다고 가정해보자. 사회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은 자명하며, 국민들 사이에서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해 우려하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정치권은 그러한 여론을 따를 것이며, 다시 원자력발전소를 신규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반드시 나올 것이다. 이미 엄청난 비용을 들여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전환은 또다시 지루한 논쟁과 함께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확산될 것이다. 이는 원할한 에너지전환이 진행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고, 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확실하게 준비하고 추진해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이러한 점이 보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공론화 과정을 살펴보자. 신고리 5·6호기를 건설한다고 해서 에너지전환에 큰 차질이 생기는 것도, 중단한다고 반드시 에너지전환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었다. 신고리 5·6호기를 계획대로 건설하고, 대신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노후원전의 조기 폐로 방안에 대해 노동자,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공론화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떠했을까.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날치기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결정했다. 이는 지난 정부에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던 것을 반복한 것이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반발하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왜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좀 더 광범위한 논의를 하지는 못했을까,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공론화위원회 설치를 두고도 대화와 토론의 과정을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사전에 노동자들과 지역주민, 그리고 각계각층과 함께 공론화위원회가 어떻게 설치되고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상호간 의견조율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원자력산업 노동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극한 대립을 하지는 않았을 거란 확신이 든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론화위원회의 일방적 설치는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공약을 빠른 시일 내에 지키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당사자와의 대화와 협의를 통해 진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으면 한다.

에너지전환의 중심은 에너지 노동자

1997년 IMF이후 신자유주의가 한국의 중심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많은 공기업들이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사유화가 되었다. 에너지공기업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에너지산업 노동자들은 민영화 저지-에너지 공공성 강화라는 의제로 지난 20년 동안 광범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이후로 민주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에너지 산업 민영화를 시도하였지만, 에너지산업 노동자들은 국민과 함께 연대하여 민영화를 막아내고 에너지 공공성을 지켜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에너지전환이 막연하고, 먼 미래의 일로만 생각했고 조직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준비를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 에너지전환 정책을 정부가 내놓고 실행에 옮기려는 시기에, 에너지전환에 대해 준비를 시작한다고 하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시기일 수도 있다. 이제라도 에너지 산업 노동자들도 시민, 학자, 정부, 산업계와 에너지 전환에 대해 폭넓게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정의로운 전환’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오래 걸리고 때로는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지만 에너지 산업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나가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 에너지 산업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 에너지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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